나는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기숙사에서 보냈다. 내가 기숙사 생활을 한 기간은 4년 동안 도합 6학기였다. 그런 환경이 특별히 체질에 맞아서라기 보다는 단지 가장 저렴하게 주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소의 비용이 모든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던 시절이었다. 졸업반에 들어서 무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냈고, 그래서 8학기 중에 두 학기는 빠졌다. 각 방에는 방장으로 불리는 예비역 졸업반 한 명에 2학년이나 3학년 중 한 명이 더 있었고, 나와 같은 새내기들은 방졸로 불리며 세 번째 침대를 차지했다. 당시의 기숙사는 낡디 낡은 3층 벽돌 건물이었다. 걸을 때마다 마루 바닥이 삐걱삐걱 앓는 소리를 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 청춘의 뼈마디도 욱신거렸다. "만성적인 허기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지독한 외로움" 기숙사에 들어갔어도 주거만 보장되었을 뿐 식사는 개별적으로 학교 구내식당을 이용해야 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끼 밥값이 아마 300원쯤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주머니는 언제나 궁핍의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었고, 그 돈을 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하루 세 끼는 고사하고 문자 그대로 굶기를 밥 먹듯 했던 때가 많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학우들이 식당으로 몰려갈 때 나는 썰렁한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있곤 했다. 밥 대신 내 굶주림을 채워주던 것은 100원짜리 삼양라면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하루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돈 1000원으로 대략 일주일 정도를 버티어내곤 했으니, 하루에 라면 두 개를 먹는 날은 포식하는 경우에 속했다. 장기간 라면만 먹다 보면 먹고 난 후에 속이 깎여 나가는 듯이 아팠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팠고 먹으면 배가 아팠다. 내가 집을 떠나 서울로 온 것은 침체되고 희망 없는 현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희망을 따라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내게는 목표가 없었고, 목표가 없었으므로 나의 스무 살 젊음은 퀴퀴한 기숙사 방에 갇혀 난파선처럼 흔들렸다. 나는 스스로 고립무원의 방에 들어 앉아 시들시들 앓고 있었다. 만성적인 허기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하다 보니 그다지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궁핍하기만 했던 지난 날의 어떤 조그마한 사건을 기억의 전면으로 끌어내는 데, 쓸 데 없이 사설이 길어졌다. 앞서도 말했듯이 기숙사는 아주 낡은 건물이었다. 그 때문에 기숙사 내에서 전열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전기 배선들 또한 건물만큼 낡아 화재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규칙이란 대개 현실과의 사이에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본보기로 걸리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일이 없는 것이다. 내가 있던 방에는 전기 코일이 동심원을 그리며 한 줄로 이어져 있는, 그 당시로서도 골동품 급에 속할 만한 전기 곤로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그것은 방장의 재산목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록 상의 서열에 비해 성능은 아주 보잘 것이 없었다. 라면 한 개를 끓이는데 못 잡아 반 시간은 족히 넘게 걸렸고, 라면을 숟가락으로 떠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그것도 덜 익은 채로 먹어야만 했다. 두 개 이상의 라면을 동시에 끓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한 끼 내지 두 끼를 먹던 나의 저녁 식사 시간은 대개 밤 10시를 넘어서 였다. 하지만 그 시간대는 선배들이 야참을 즐기는 시간대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피하기 위해 혼자 딸그락거리고 냄새를 피우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까마득한 선배들의 신경을 쓰이게 할 만큼 비위장이 좋지도 못했다. 때문에 다행히도 선배들의 소화 기능에 이상이 생기거나 그들이 심한 정신적 방황 따위로 입맛을 놓아버린 날이 아니라면, 내 차례가 오기까진 적어도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까 그 사건이 있었던 날은 선배들이 모두 방을 비운 어느 주말이었다. 주말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동시에 방을 비우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었으므로, 그 흔하지 않은 독점의 기회를 맞이한 내 마음은 여느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느긋해져 있었다. "왜 그런 잔인한 유혹에 빠져들었을까?" 냄비에 물을 부어 곤로 위에 얹었다. 마음은 모처럼 여유로웠고 늦은 밤의 캠퍼스는 평화로웠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창틀에 붙어 있는 작은 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거무튀튀하고 못생긴 벌레였다.
난 그 녀석을 불에 태워보고 싶어졌다. 불에 태우면 놈이 뿜어내는 악취도 같이 태워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런 잔인한 유혹에 빠져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버티는 것이 정답이다. 종이 뭉치를 하나 말아 들고 조심스럽게 놈에게 다가갔다. 내가 가까이 갈 때까지 그 녀석은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었는데, 그때까지의 경험상 내가 적대적이지 않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에 누굴 믿는단 말인가. 우린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 아니었던가. 나는 놈이 터지지 않고 조용히 기절만 할 정도로 가만히 그러나 정확하게 내리쳤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주 정신을 놓아버리진 않았는지 녀석은 뒤집혀진 채로 짧은 다리들을 바둥거리고 있었다. 놈은 무엇을 붙잡고 싶었던 것일까. 놈이 그 뭔가를 붙잡기 전에 나는 녀석을 들어서 성냥개비가 몇 개 남아 있는 작은 성냥갑에 집어 넣었다.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손을 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긴장해야 했지만, 어쩌면 그 녀석이 느꼈을지도 모를 당혹스러웠을 기분을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음은 빈 쓰레기통에 벌레가 든 성냥갑을 넣고 불을 당길 차례였다. 물론 만약의 경우를 위해 한 컵의 물을 준비하는 치밀함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불을 붙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부질 없는 호기심은 깨져버리고 말았다. 성냥갑이 다 타고난 후에도 녀석은 새카맣게 그을린 채로 여전히 그 역겨운 냄새를 뿜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창 밖으로 녀석을 던져버리고 한참 동안 환기를 시켰지만 비릿한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그 냄새는 손에서도 몸에서도 묻어났고, 방안 구석구석까지 배어버린 듯 코 끝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녀석이 죽어가며 나에게 보여 준 유일한 저항은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그 녀석의 저항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때 내 눈과 마주친 그것이 녀석의 눈이었을까?" 모처럼의 느긋했던 마음을 망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내 잔인한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난 재수 없는 벌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냄비 뚜껑 아래에선 조금씩 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봉지를 뜯어서 네 조각으로 쪼갠 라면 덩어리를 냄비에 집어 넣었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부풀려질 때까지는 한참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책상에 앉아 기다리던 나는 엎드린 채로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쯤 잤던 것일까. 손바닥만큼이나 큰 아니 어쩌면 내 머리통 크기는 족히 됨직한 노린재 한 마리가 뿌연 안개 속에서 나타나 내 다리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꿈을 꾸었다. 그때 내 눈과 마주친 그것이 녀석의 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소름 끼치는 느낌과 매캐한 냄새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방 안엔 온통 연기가 자욱했고 타버린 라면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일어나 전기 코드 뽑아내고 창문을 열어 연기를 빼내는 둥 부산을 떨어봤지만 결국 그날 밤은 굶어야 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사건으로 인해 규칙 위반으로 기숙사에서 쫓겨날 뻔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전기 곤로를 압수 당하는 것만으로 무마되긴 했지만, 덕분에 한동안 내 식생활은 상당한 곤경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 전기 곤로의 주인이었던 방장은 나로 인한 재산상의 손실을 보상 받지 못한 채 졸업하고 말았다.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거의 이십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물질적으로 많이 풍족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다만 만성적인 식욕부진이 내 속에 있는 허기의 이유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나침반의 바늘은 아직도 부러져 있고 나는 여전히 난파선처럼 떠돌고 있다. 여기까지 참 용케도 흘러왔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문득 그 날의 비릿한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 듯한 기분이 든다. 놈은 여태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전의를 상실한 내 모습을 끊임없이 비웃고 있는 모양이다. 마치 내가 항복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벌레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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