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질 무렵의 노을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 노을의 붉은 빛이 그의 얼굴 위에서 반짝일 때 보면, 어쩌면 그가 소혹성 B612호나 혹은 거기서 멀지 않은 어떤 작은 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노을을 보면서, 자리를 조금만 고쳐 앉으면 싫증이 날 때까지 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그 별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곤 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든 별에서 온 친구가 생긴다면 그런 느낌을 갖게 되겠지만, 나에게 그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래서 그가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원할 때 하루 종일 저녁노을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자면 먼저 나는 기술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를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그것을 검토한 결과 보고이다.

적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지구의 둘레는 약 40,075km이다. 지구가 한바퀴 도는데 24시간이 걸리므로 지구의 자전 속도는 시속으로 대략 1,670km 초속으로는 464m가 된다. 내 계산 방식에 다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무시해 주길 바란다. 이 글에서 수치상의 정확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위에서 계산된 것과 같은 속도로 이동할 수만 있다면, 나는 계획한 선물을 그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초속 464m는 음속의 1.364배 정도 된다. 성능이 좋은 비행기를 탄다면 충분히 가능한 속도다. 하지만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그 속도로 날 수 있는 비행기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누군가는 정지궤도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른다. 그렇다. 정지궤도상의 물체는 지구의 자전속도와 동일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그 궤도에 올려진 인공위성을 탄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감스럽지만 그런 경우에도 붉은 노을을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대기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대기가 있다고 해도 그 위성은, 뜨는 태양을 향해서 이카루스처럼 날아가버릴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것은 저녁 노을이다.

결국 나는 그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을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가 떨어진 별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조금 다른 선물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눈빛을 받을 때마다 노을처럼 붉게 물드는 내 마음이다.

내 나이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고,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는 내 가슴 위로 번지는 그 노을은 틀림없이 저녁 노을을 닮았을 것이다. 날이 아주 저물어버리기 전에 한번쯤, 아름답고 비장하게 물들고 싶은 이 마음을 그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짧지 않은 시간이 노을처럼 물들다 어두워졌다. 그리고 저녁노을 뒤에는 캄캄한 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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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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