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碑銘

- 함형수(1914~1946) -

나의 무덤 앞에서 그 차가운

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노고지리는 종달새의 옛이름

해바라기의 비명은 1936년 <시인부락> 창간호에 실렸다. 이 시를 처음 읽던 순간,나는 고흐의 그림을 떠올렸다.

고흐의 그림 속에서 날던 노고지리는 약 50년 후 함형수의 시 속에서 다시 푸른 하늘을 쏘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죽음의 이미지처럼 비극적이었다.

시인 함형수. 그는 사랑에 실패한 후 심한 정신착란에 시달리다 서른 셋,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고흐는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쏘았다.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종달새가

있는 보리밭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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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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