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건물의 남서쪽 모서리에 있다. 내가 까치발을 하고도 건너편을 볼 수 없을 만큼 높은 칸막이가, 사무실의 대략 중앙 부분을 남북으로 지나간다. 그 칸막이를 기준으로 동쪽 절반의 블록에 나는 지금 앉아있다. 이곳은 대체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때는 바로 프린터에서 뭔가가 인쇄되고 있거나, 이따금 크로스 컷 슈레더(Cross cut shredder)가 작동되는 순간이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자리가 비워지는 밤 시간에는 정적의 두께가 더욱 두터워지는데, 이럴 때는 컴퓨터 본체에서 나오는 소음이 마치 공회전 중인 자동차 엔진 소리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내가 평소에 소리에 민감한 편이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밤 늦은 시각에 이렇게 혼자 있노라면, 칸막이 건너편에서 들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일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남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 이리저리 걸어 다니거나, 계속해서 무언가를 뒤적이는 소리가 들릴 때는 누구라도 신경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있나 싶어 가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는 뚝 그친다. 나는 지난 봄에 있었던 건강 검진 결과, 소음성 난청이란 진단을 받았었다. 내가 받은 진단은 환청이 아니라 틀림없이 난청이었다. 순찰을 도는 경비원이 조금 전에 다녀갔다. 이제 곧 건너편에서 누군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나도 슬슬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출입문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자, 이제 그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보자. 복도에는 창문이 없다. 따라서 낮과 밤이 전혀 의미가 없다. 몇 개의 부분 조명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모두 꺼진 상태다. 출입문을 등지고 섰을 때, 복도의 우측은 대회의실이고, 막다른 맞은편에는 그보다 작은 회의실이 있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20미터쯤 되는데, 사무실을 소등하지 않은 상태로 이렇게 서 있으면, 내 그림자가 복도의 거의 중간까지 길게 늘어진다. 일단 소등을 하자. 그렇게 긴 그림자가 어둠 속에 어슬렁거리는 걸 보는 건, 그게 비록 내 것이라고 해도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소등을 하면 남은 빛은 이제 두 곳이다. 모두 복도의 좌측에서 들어온다. 좌측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두 번째 문은 복도 맞은편 끝에서 몇 걸음 못 미친 곳에 있는 화장실 문이고, 첫번째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의 중앙부분으로 나가는 문이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그 문에서는 문을 찾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의 빛이 들어온다. 나는 언젠가 그 문을 열지 않고 그냥 통과할뻔한 적이 있다. 물론 실패했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안경이 부러졌다. 안경이 없었다면 코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는 복도에 아무런 빛도 없었고, 눈앞에 내 손을 들이밀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었다. 말하자면 눈보다도 더듬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밤이 한번쯤은 있게 마련이다. 인식기에 출입증을 갖다 대면 곧 이어, 딸깍,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나서면 나는 이제 건물의 북쪽을 향하게 된다. 좌우측에 각각 4기의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지금 시각에는 그 중에 2기만 운행되므로,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가능하면 내가 나왔던 방향을 되돌아보지 않는 게 좋다. 얼마 전 언젠가 TV에서 동물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 앞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거기 나온 동물들은 대부분 그게 제 모습이란 걸 알아채지 못하고, 낯선 경쟁자의 출현에 겁을 먹거나 적의를 드러냈다. 내가 열고나온 유리문 속에 내 모습이 비친다. 어둠을 배경으로 서서 내가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보이는 반응은 실험 속의 동물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바로 두려움이다. 낯선 것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익숙하다고 여겼던 어떤 것이 어느 순간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질 때,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면 더욱 더. 예를 들면 영화 ‘거울 속으로’의 등장 인물들 중 몇 명은 자신의 그림자에게 살해당한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도 하는 바로 그 두려움이, 어쩌면 칸막이 건너편에서 들리는 정체불명의 소리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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