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절정에 이르렀다. 사직공원에서 인왕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도 개나리며 벚꽃들이 흐벅지다. 그러나 만개한 꽃들에겐 이제 지는 일만 남았다. 꽃이 있어 봄은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의 덧없음으로 인해 봄은 쓸쓸한 계절이기도 하다. 꽃을 배경 삼아 한 컷 사진을 찍는다. 무엇을 담아두고 싶었던 것일까. 꽃이었을까? 나였을까?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둘 다 제 삶의 가장 화려한 시절에서 조금씩 내려서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봄이 오면 산에 데려가겠다고 작은 아이와 약속을 했었다. 지난 겨울이었다. 그 후로 아이는 잊어버릴 만하면 한번씩 봄이 어디만큼 왔느냐고 묻곤 했다. 마침내 아이가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온 세상을 뒤덮었고, 나는 약속대로 아이의 손을 잡고 봄볕 속으로 나왔다. 목적지는 인왕산으로 정했다. 인왕산은 여섯 살 아이가 무리 없이 오르고 내리기에 적당한 경사와 높이를 가졌다. 게다가 낮은 고도에도 불구하고 바위산답게 기암들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경치를 품었다. 북쪽 멀리는 족두리봉에서 문수봉에 이르는 북한산의 비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능선 중간에는 사모바위가 콩알만하게 보인다. 인왕산을 중심으로 아래 위로 비스듬하게 북악산과 안산이 지척인데, 북악산 바로 밑의 청와대가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진다. 바로 그 청와대 때문에 인왕산은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고, 지금도 그 방향으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인왕산에는 이름을 가진 여러 바위들이 있는데, 그 중 치마바위는 단경왕후와 중종의 애틋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즘은 암벽등반 초보 실습장으로 많이 이용된다.
정상에서 기차바위를 지나 홍제동으로 내려오는데, 산 밑자락 풀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쑥을 뜯고 있다. 벌써 바구니가 수북하다. 이렇게 생긴 풀이 쑥이란다. 쑥을 뜯을 땐 뿌리째 뽑지 말고 이렇게 줄기를 끊어내야 한다. 그러면 거기서 다시 쑥이 자라 오르거든. 가르쳐주니 아이들도 재미 삼아 쑥을 뜯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본다. 다섯 살 터울의 두 아이가 나란히 쪼그려 앉아 서툰 손놀림으로 쑥을 뜯으며 콧노래까지 맞춰 부른다. 제법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꽃이 진 자리에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 이파리들처럼, 내 젊은 날이 비켜난 자리에도 싱그러운 아이들이 새순처럼 돋아나고 있다. 저 아이들이 있어, 봄이 가고 꽃은 져도 아주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