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운대(沒雲臺)는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이자 다대곶의 동편에 있는 육계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짙은 안개가 자주 끼어 몰운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나는 작년 언젠가 그곳에 갔었다. 구름은 한 점도 없고 햇빛에 눈만 부시던 유월이었다. 몰운대의 초입에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몰운대 시비가 나온다. 바위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白雲天半沒孤台백운천반몰고태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常見仙人駕鶴來상견선인가학래 조선 선조 40년 동래부사 이춘원이 썼다고 적혀 있고, 그 뒤에는 번역된 글이 이어진다. 역자는 정경주다.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요 만리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새벽마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수첩에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베껴왔는데, 어느날인가 문득 원문을 다시 해석해보고 싶어진 것은 두 번째 행의 태(台)라는 글자에서 생겨난 의문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글은 사전과 옥편을 뒤적여가며 나름대로 해석한 내용이다.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먼저 호탕(浩蕩)이란 말의 의미다. 이것은 호호탕탕의 준말로 아주 넓어서 끝이 없다는 뜻이다. 기개가 당당하고 호걸스럽다는 뜻의 호탕(豪宕)과는 다르다. 따라서 의미상으로 호탕과 천만리는 동어반복이다. 풍(風)은 바람이고 도(濤)는 물결을 뜻하므로, 풍도는 바람의 물결이다. 즉 이 문장은 드넓은 바다 위로 끝없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白雲天半沒孤台백운천반몰고태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태(台)다. 왜냐하면 태(台)를 대(臺)의 약자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臺)는 돈대나 누각 따위를 뜻하는데, 위의 변역자 역시 태(台)를 몰운대(沒雲臺)의 대(臺)라고 오역한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의문의 발단이었다. 태(台)는, 예를 들면, 삼태성과 같이 ‘별 이름 태’로 쓰거나, 임금이 자신을 일컬을 때 아(我) 대신 쓰는 말이다. 후자인 경우엔 ‘태’로 읽지 않고 ‘이’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 임금이 쓰는 말을 동래부사가 썼을 것 같지는 않으므로, 여기서의 ‘태’는 별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위의 시에서 시점은 새벽녘(3행의 曉)이므로 그 무렵 동쪽(3행의 扶桑) 하늘에 뜬 별이라면 아마 샛별쯤 될 것이다. 물론 정황상으로는 몰운대를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번역자가 태(台)를 몰운대로 번역한 것도 아마 그런 정황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동래부사 이춘원은 왜 굳이 약자를 그것도 틀린 약자를 썼던 것일까. 문학적으로는 필요에 따라 간혹 어법에 틀린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므로,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떤 중의적인 뜻을 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해볼 뿐이다.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부상(扶桑)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동쪽바다 해 뜨는 곳에 있다고 하는 신령스러운 나무 혹은 그것이 있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당연히 물 위로 떠오른다는 뜻의 부상(浮上)과는 다르다. 이 말은 중국 고대의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 실린 탕곡부상십일신화(湯谷扶桑十日神話)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기서 부상은 높이가 3백리나 되고 둘레가 2천 아름에 달하는 나무를 가리킨다. 열 개의 가지에는 각각 열 개의 태양(十日)이 걸려 있으며, 이 열 개의 태양이 차례로 동쪽의 탕곡(湯谷)이란 계곡에서 목욕하고 부상(扶桑) 나무 가지 위로 올라가 하늘로 떠오른다는 내용이다. 부상이란 말이 어떻게 쓰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광해군 때 이경직이란 사람이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오며 기록한 사행일기가 있는데, 그 제목이 부상록(扶桑錄)이다. 여기서 부상은 해가 돋는 곳, 즉 동쪽에 있는 일본을 뜻한다. 미루어보건대 부상이라는 단어는 해 뜨는 곳의 의미로 흔히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도 그냥 해가 뜨는 곳, 즉 동해바다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효일(曉日)은 새벽 해이고, 붉은 수레바퀴(車輪赤)는 효일의 은유적 표현이다. 常見仙人駕鶴來상견선인가학래 가(駕)는 수레나 가마를 뜻한다. 앞 행에서 해에 비유했던 붉은 수레바퀴(車輪赤)와 연결된다. 선인(仙人)은 곧 신선이고, 학(鶴)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두루미다.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새가 곧 학이다. 몰운대의 지형이 바로 학이 날아가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학이 등장한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해석을 토대로 정리를 해보면 이렇다. 바람이 불어서 구름을 움직이고, 그 구름에 별 하나가 잠기고, 그때 동해바다에서는 붉은 해가 떠오르는데, 그 기상이 마치 신선을 보는 듯 신령스럽다. 끝없는 바다 위로 바람이 불어 외로운 별 하나 구름에 잠기네 떠오르는 새벽 해는 붉은 수레바퀴 언제나 만나네 학을 탄 신선 그런데 막상 이렇게써놓고 보니 그다지 새로울 것도, 더군다나 나을 것도 전혀 없다. 애만 썼다. 도로무익(徒勞無益)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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