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에 따르면 내 오른팔은 지금 심한 근육통을 앓고 있다. 벌써 2주째에 접어들었다. 팔을 비틀거나, 구부리거나, 구부렸다 다시 펴는 동작들이 몹시 부자연스럽고 고통스럽다.

손의 기능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팔을 구부리는 게 어렵다 보니 손을 써야 하는 이런저런 일상적인 일들이 불편해졌다. 양치질 수준의 상대적으로 덜 섬세한 동작은 왼손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예를 들어 젓가락을 다루는 일처럼 섬세한 감각을 요하는 동작은 그러기가 어렵다. 그로 인해 입에 뭔가를 넣을 때마다 고통이 따른다. 마치 무슨 철학적인 의미를 내게 깨닫게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팔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내게 있어서 오른팔은 그야말로 오른팔과 같은 존재였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들은 오른쪽에 주어졌고, 왼쪽은 대개 무시되거나 보조 역할에 그쳤다. 어원에서부터 알 수 있듯, 오른쪽은 옳은 쪽으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편견 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 편견 위에 세워진 세상에서, 오른쪽은 모든 점에서 우대를 받아왔다. 밥상 위에서 수저는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놓인다. 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진다. 여닫이 문은 오른쪽이 고정되어 있다. 문고리를 왼손으로 잡고 문을 열어보라. 들고 나는 동작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 개표구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우리가 통과해야 하는 이 세상의 수많은 문들은 어떤 형태로든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종종 문에 비유되는 남자 바지의 지퍼 역시 오른쪽으로 트여있는데, 남성의 성징을 우선적으로 다룰 자격 역시 오른손에 주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른쪽 위주의 사고 방식과 가부장적인 전통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으며, 나아가서는 보수적인 성향의 집단을 오른쪽에 비유하게 되는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했던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이 세상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안다고 해도 따라 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왼쪽은 이미 너무나 불리하다. 왼쪽이 비교적 돋보이는 경우로 야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소수인 왼손잡이들의주무기는 다름아닌 불편함이다. 다시 말해서 오른손잡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역할인 것이다. ‘불편’ 앞에 ‘고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진 않겠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오른쪽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세상의 무게가 점점 버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오른팔이 고장 나기 이미 오래 전부터 말이다. 그 증거로, 원한다면, 나의 오른쪽 쇄골을 보여줄 수도 있다.

내 오른쪽 쇄골은 나의 성장기 동안에 이미 비틀리고 휘어졌다. 쇄골이 받치고 있던 어깨 역시 전방을 향해 기울어졌다. 아마 세상이 내 오른쪽에 매달아 놓은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거울에 비춰보면 왼쪽과 오른쪽의 옆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육안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오른쪽은 다소 기형이다. 그 결과 나는 의도적으로 내 오른쪽 옆 모습을 외면하려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쓰는 능력보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을 쓰는 능력이 더 우수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오른쪽이 무겁다. 어차피 한몸이고, 지금쯤이면 오른쪽의 짐을 왼쪽으로 조금 나눠질 법도 한데 말이다. 이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투표가 있었던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부시의 재선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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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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