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글

무덤으로의 초대 3

추락주의 2004. 11. 18. 13:01

설악산 달마봉을 넘어가는 능선에서 목우재로 내려서기 전 갈림길에는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된 무덤인지, 모르고 보면 그게 무덤이라는 걸 알아보기조차 힘든 무덤입니다. 봉분은 진작에 다 닳아져 버렸고, 주변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습니다. 유심히 봐야 좁은 빈터 가운데가 살짝 볼록하구나 하는 느낌이 겨우 들 뿐입니다. 누군가 그 속에 묻힌 채로 영영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그곳에 묻어두고 그만 까맣게 잊어 버렸겠지요. 어쩌면 그가 살았던 삶보다도 훨씬 더 긴 죽음을 그는 죽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낯선 발자국이 찍힐 때마다 무덤에서는 흙먼지가 폴폴 날립니다. 무덤이 조금씩 증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덤의 주인은 단 한번도 무덤을 떠난 적이 없는데, 그러나 사람들은 그 무덤을 가리켜 임자 없는 무덤이라고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