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글

거미

추락주의 2004. 12. 2. 11:27

거미 1.

거미는 사냥을 하기 위해 덫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비슷하다.

 

거미 2.

거미는 능숙한 사냥꾼이므로, 결코 제가 쳐놓은 덫에 걸리는 법이 없다. 자신이 판 함정에 빠지기도 하는 한심한 사냥꾼은 인간뿐이다.

 

거미 3.

거미는 간혹 가느다란 줄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거미가 새로운 덫을 놓기 위해 번지점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덫에 걸린 인간들이 덫에서 벗어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목을 매기도 하지만, 거미는 스스로 목을 매지 않는다.

 

거미 4.

거미는 가급적 인간의 서식지를 피하여 서식한다. 인간은 거미를 흠모하여 전 세계적인 규모의 거미줄(world wide web)에서 서식한다. 방 한구석에 포식자처럼 웅크리고 앉아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인간의 모양은, 언뜻 보면 거미를 닮은 데가 있다. 거미인간은 1962년에 이미 영웅의 반열에 등극했다.

 

거미 5.

거미는 꽁무니에서 줄을 뽑아낸다. 인간은 손가락 끝에서 글자들을 뽑아낸다. 거미는 자신의 작품에 스스로 도취되지 않으며, 하루가 지나면 제가 쳐놓은 그물을 스스로 먹어치운다. 인간은 자신이 뱉어낸 것을 되 삼키는 법을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뽑아낸 글자들에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거나, 이런저런 장르로 나누어 보관하는 일을 즐긴다.

 

거미 6.

거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