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비야우공간

사량도를 바라보며

추락주의 2005. 4. 15. 00:09

1.

내가 사량도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김종해 시인의 시 속에서였다. 항해일지란 제목으로 쓰여진 연작시 중 스물여덟 번째는 “한려수도 물길에 사량도가 있더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내 상상 속의 사량도는 붉은 난꽃이 핀 절벽이었다. 그 절벽에 한번 매달려보고 싶었다.

사량도 눈썹 밑에 노오란 평지꽃이

눈물처럼 맺힌 봄날

나도 섬 하나로 떠서

외로운 물새 같은 것이나

품어주고 있어라

부산에서 삼천포 물길을 타고

봄날 한려수도 물길을 가며

사랑하는 이여

저간의 내 섬 안에 쌓였던 슬픔을

오늘은 물새들이 날고 있는

근해에 내다 버리나니

우는 물새의 눈물로

사량도를 바라보며

절벽 끝의 석란으로 매달리나니

사랑하는 이여

오늘은 내 섬의 평지꽃으로 내려오시든지

내 절벽 끄트머리

한 잎 난꽃을 더 달아주시든지

2.

2005년 4월 3일, 사량도로 향하는 내 물길의 시작은 부산이 아니라 경남 고성군 장호리였고, 삼천포는 이제 사천이란 지명으로 바뀌었다. 사량도 옥녀봉을 오르는 절벽에는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날씨 좋은 봄날에는 석란보다 사람이 더 많이 매달려 있기 쉽다.

3.

삼천포는 이번이 두 번째. 몇 해전이었더라.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창밖에 포구가 보이는 여관에 묵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잔물결에 등이 배겨서 밤새 뒤척거려야만 했던 밤. 칼바위 위에 부는 바람처럼 참으로 조마조마했던 시절을 나는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