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없는 여행의 기억 7 - 배고픈 말
1. “오늘 어디까지 가지? 칼리스펠?” “아뇨, 여기 어떻습니까?”
나는 손가락 끝으로 칼리스펠보다 조금 북동쪽으로 올라간 지도 위의 한 점을 짚었다. 배고픈 말(Hungry horse). 몬타나의 거의 북쪽 끝이자 글래시어를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인구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
전날 묵었던 뷰트에서 배고픈 말까지는 어림잡아 서울에서 부산 가는 정도의 거리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멀다.
2. 그날 만났던 특이한 지명은 ‘배고픈 말’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배고픈 말로 가기 위해 93번 하이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호수를 만나게된다. 길이가 대략 45km쯤 되는 이 호수의 이름은 ‘납작 머리(Flathead) 호수’다. 원래 그 일대가 납작 머리 인디언들의 땅이었음을 호수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러나 지금은 ‘납작 머리 인디언 보호 구역’이 되었다. 그곳의 인디언들에게 붙여진 납작 머리란 이름은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인 어떤 상징이 아니다. 그곳에 살았던 인디언들은 정말로 이마가 납작했다.
이 그림은 George Catlin이란 화가가 네 명의 납작 머리 인디언을 모델로 삼아 그린 그림이다. 옆 모습을 보이며 앉아있는 왼쪽 끝 인디언의 이마를 보면 왜 납작 머리란 이름일 붙여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아이의 머리를 두 개의 널빤지 사이에 고정시켜 저런 모양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왜?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림 속 인디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몹시 공허하게 느껴진다. 잃어버린 것들이 남겨놓은 희미한 흔적 위에 그들은 서있다. 배고픈 말에서의 내 얼굴도 어쩌면 저 인디언들과 비슷한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만 같다.
3. 어느 순간 불현듯, 그때까지 알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심지어는 내 자신으로부터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그냥 가자니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한 것이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온통 낯선 것들뿐인데, 그 중에서 가장 낯선 것은 바로 내 자신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다.배고픈 말.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와 비슷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곳은 공기조차도 막막함으로 가득채워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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