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길

짝퉁에 관한 짧은 메모

추락주의 2006. 9. 14. 12:37

사진을 찍을 때 가급적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나름대로는 애썼다. 그래 봐야 실제로는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이 배경에 나타나지 않게 방향과 각도를 이리저리 몇 번 바꿔본 것이 전부지만.

그런데 왜 나는 짝퉁을 찍으면서 진짜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던 걸까.

라캉이 어쩌고 저쩌고, 욕망이 어쩌고 저쩌고, 타자가 어쩌고 저쩌고 따위의설명으로 마치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 어설프고 골치 아프다.

이유는 단순하다. 진짜를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였더라면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어찌 되었거나, 배경에 둘러쳐진 펜스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내 노력은 더 나은 결실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짝퉁은 어떻게 해도 결국 티가 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알고 보면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라고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고 있다.

2006.9.10

부천 아인스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