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서파 트래킹
8월 16일 이른 아침 송강하를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눈이 부셨는데 서파 산문을 지나면서 점점 구름이 많아지더니 5호경계비 오르는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1,236계단 중 구름 아래로 드러난 것은 겨우 100여개 남짓, 그리고 마중나온 맵찬 바람 |
무슨 까닭인지 멀쩡한 돌계단 옆에 나무 계단을 새로 놓고 있다. 새로 놓는 계단 수는 몇 개가 될까? |
주차장의 고도가 이미 해발 2,200m를 넘는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 Billings에서 Yellowstone 가는 길에 넘어 갔던 Beartooth Pass, 우리말로 하면 웅치령쯤 되는 그 고개가 해발 10,947ft, 미터로 환산하면 약 3,336m 였다. 그때 이후로 두번째 높은 땅에 발을 내딛었다. |
5호경계비에 도착했으나 역시 예상했던 대로 천지는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 |
5호경계비 주변을 안개처럼 잠시 서성거리다, 어렵게 왔으니 기필코 봐야 한다는 욕심 같은 것, 버리기로 한다. 백두산에는 해발 2,500m를 넘는 봉우리가 모두 열여섯 개 있고, 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그것들 뿐이라 한다. 서파 트래킹 구간은 그 중 다섯 개를 지나가는데 이름 있는 봉우리나 이름 없는 봉우리나 어느 것 하나 이름표를 달고 있는 봉우리는 없다. |
한허계곡, 청석봉과 백운봉 사이의 절벽을 피해 우회하는 길,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한참을 올라가야 하지만, 땀 흘린 것이 아깝지 않은 풍경을 선물로 받게 된다. 겻들여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목을 축일 수도 있다. |
한허계곡에서 백운봉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은 서파 구간 중에서 가장 힘든 길이기도 하지만 그냥 두고 가기에 아쉬워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길이다. |
그래, 그럴 땐 잠시 쉬었다 가자. |
그리고 길은 다시 구름 속으로 이어진다. 백운봉 지나 저 앞이 녹명봉인가? 어디가 어딘지 분명치는 않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다 싶던 그 순간…… |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안개의 섶을 헤치고 천지가 속살을 드러낸다. |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
보지 않았으면 그립지도 않았을 텐데 |
아마 두고두고 그리울 것 같다. |
그 길 위에 함께 있던 오늘의 너희들도. |
내려가는 길은 휴식처럼 포근하다. |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 달문 가는 길은, 오늘, 막혔다 한다. |
천지에 손을 적시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 |
다시 올 이유를 하나쯤 남겨두는 것도 그리움을 달래는 방법이 될 테니까. |
그 날에도 우리 함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
저 아래, 총 15km 서파 트래킹의 종착점이 보인다. 오늘은 저기에서 멈추지만, 그러나 거기가 길의 끝은 아니다. |
흘러가기만 한다면, 길은 계속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