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비야우공간
애인은, 너무, 멀리 있다
추락주의
2004. 10. 4. 19:17
눈을 뜨자 버스는 이미 어두워진 남한 강변을 지나가고 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수많은 모텔들. 모텔들을 비추는 휘황한 조명 장식들. 모텔들은 이름도 외관도 가지각색이지만,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 불빛들만은 모두가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취향은 제각기 달라도 욕망은 닮은꼴이다. 이 시대에는 사랑해야 할 애인들이 이토록 많다. 남한 강변. 이곳에 와서 그들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강물과 함께 ‘쉬었다’ 간다. 흐르는 것과 더불어 멈추기. 그것은 강에 둑을 쌓는 것과 비슷하다. 애인들이 떠난 뒤에 그들이 씻어낸 욕망의 분비물이 강물에, 은밀히, 방류된다. 그리하여 욕망은 순환된다. 혹은 무한 반복의 계로 편입된다. 예를 들면, 수도관을 타고 다시 배달된다. 언제나 목이 마른 이 세상의 수많은 애인들에게로. 그리하여 회유(回游)하는 송어 떼처럼 애인들은 다시 이곳으로 온다. 언제나 꺼지지 않는 밤, 밤의 꽃들처럼 피어난 모텔들, 속에서, 밤 꽃 냄새를 날리며 애인들이 웃는다. 강변의 추억*을 지나 버스는 습관처럼 달리고,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나의 애인은 지금, 너무, 멀리 있다. * 강변의 추억 : 남한강변에 있는 카페의 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