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어느 가을
내 기억 속의 1988년 가을은 마치 겨울처럼 추웠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해 나는 교내 고시실에서 기숙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내가 졸업한 후에 새 건물을 지어 옮겨갔지만, 당시의 고시실은 강의실을 약간 개조하여 만든 것이라 매우 조악한 환경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운데 통로 부분을 중심으로 양쪽에 칸막이가 된 책상들이 있었고, 날씨가 추워지면 석유 난로 두 개가 통로 이쪽과 저쪽 편에 하나씩 놓여졌다. 밤이 되면 집이 있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책상 밑이나 통로 변 적당한 곳에 이불을 깔고 잤다. 그때 내가 가진 침구는 그리 두텁지도 넓지도 않은 담요 한 장이 전부였는데, 그것을 반으로 접어 한쪽은 깔고 나머지 한쪽을 덮었다. 잠을 잘 때 난로 주변에 자리를 잡지 않으면 자다가 추워서 깨어나기 일수였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얇은 장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였다. 같은 자세로 조금만 오래 누워 있으면 뼈 속까지 시려오는 느낌이 들곤 했다. 프라이팬 위의 생선처럼, 그러나 열기가 아닌 냉기를 피하기 위해 몸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그때마다 내 몸의 새로운 부분이 담요 바깥으로 노출되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가려지지 않던 궁핍한 현실의 환유.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었으므로, 잠을 자는 일은 점점 고역이 되었다. 그런 밤이면 바깥에서는 휑한 캠퍼스를 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비명처럼 들려 오곤 했다. 아마 그런 밤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잠 못 들고 일어나 앉아 이 낙서 같은 글을 긁적거렸던 것은. 담요 한 장을 접어 깔고 덮고 모자라 발 끝은 맨 땅 머리 밑은 돌 베개 돌아누우면 허전한 내 짠한 등허리 새벽은 멀고 칼바람 소리 무엇을 도려내는지 울부짖는데 담요 한 장을 접어 깔고 덮고 모자라 춥디 추운 이 가을밤 그날을 생각하면 언제나 낮고 짙게 깔린 구름이 떠오른다. 오늘은 하늘이 이렇게 파란데, 생각해보니 내 꿈은 그때 이미 무채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