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매달린 새
새가 공중에서 멈출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주 작은 새인 벌새가 뒤로 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앞으로든 뒤로든, 현실의 하늘 위에서든 관념의 허공 속에서든, 새는 언제나 날고 있어야 했다. 마치 그것이 날개 달린 것들의 운명이기라도 한 것처럼.
11월 20일 오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나는 해발 1,083m인 간월산 정상에서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의 어둠은 이미 가셨지만, 해는 아직 지평선 부근에 깔린 구름 속에 묻혀 있었다. 몹시 맵찬 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눈짐작으로 봤을 때, 나보다 겨우 몇 미터쯤 높은 바람 속 공중의 한 점에 새 한 마리가 딱 멈춰 있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줄에 매달린 새 모양의 모빌처럼 조금씩 흔들리며.
물론 내가 목격한 장면에 대해 얼마든지 사실적인, 그러나 재미는 없는 추측을 할 수도 있었다. 자연과학에 대해 인류가 쌓아놓은 지식의 세례를,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도 조금은 받아왔으므로. 그리고 그 추측에 따르면, 새는 단지 거센 맞바람에 부딪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새는 왜 고집스럽게 그 방향을 고수하고 있었을까. 그를 가로막은 바람의 벽을 조금 비켜갈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뚫리지 않는 벽을 온몸으로 밀어대고 있었던 것일까. 바람 속에서 길을 찾아내는 것은 새의 본능 아닌가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거기 멈춰 서서 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녀석도 그 공중에 멈춰 있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 사진기를 꺼내 새를 찍었다. 그에게도 그 장면은 낯설고 신기해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날고 있는 새도 사진 속에서는 정지해버릴 것 아닌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속에서 해가 떠올랐고, 새가 자리를 떴고, 이어서 나도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내 뒤를 쫓아오며 꼭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무슨 말인가를 쉬지않고 건넸지만, 내 귀는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새가 자리를 떴고, 이어서 나도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귀를 기울이면 그때 나를 쫓아오던 바람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신불산을 오르고 있다. 뒤에 내려다보이는 산이 간월산이다. 약간 좌측에 보이는볼록한 정상 위에 내가 서있었고, 나보다 조금 위에 새가 있었다. 산이 황토빛으로 보이는 것은, 산이 억새로 덮혀 있기 때문이다.
신불산을 넘어서면 억새평원이 펼쳐진다.가능한 한 느리게 지나가고 싶은 길, 아예 끝이 없었으면 싶은 길이 거기에 있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도 그곳을 마주했던 순간의 황홀한 느낌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좌측의 봉우리가 영취산이라고도 부르는 취서산이다. 취서산을 내려가면 양산 통도사가 나온다.
☞ 사진에 대해서 내가 찍은 사진은 없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진은 찍힌 사진이므로 내가 찍지 않은 게 당연한 것이고, 세 번째 사진 역시 다른 분이 찍은 사진을 옮겨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