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삼편 - 김현식 - 1. 우리도 가끔 낙타가 된다. 낙타, 그리움이라고 하자. 깊은 밤, 잠이 깼다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낙타를 볼 것이다. 왜, 그리움이 당신을 깨웠으니까. 그러나 당신이 그리워하는 것은 아주 먼 곳에 있다. 냉장고보다 멀고 싱크대보다 멀다. 먼 곳에 있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다. 낙타는 멀리 있다. 당신은 뇌의 사막을 디디는 낙타의 발자욱 소리를 듣는다. 낙타의 목에서 가슴으로 이어진 갖가지 색의 장식끈을 생각한다. 손을 내밀지만 낙타는 모래언덕 너머로 사라지기 전, 잠시 고개만 돌릴 뿐, 당신은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진 자신을 봐야 한다. 불쌍하므로 멀리서 낙타가 울고 당신도 따라 눈물을 흘린다. 깊은 어둠, 모래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면 당신은 고독과 절망, 뿌리와 줄기, 그리고 그리움 따위의 풀을 되새김질 해야 한다. 2. 낙타전설 낙타, 원색동물도감 낙타편의 낙타는 낙타가 아니다. 낙타,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말없이 걷는다. 당연, 길은 낙타의 언어이므로 길이 끝나는 곳에서 물을 마시고,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바람을 마신다. 낙타는 길로 말한다. 한편, 오랫동안 낙타와 한몸이 되어 사막에서 단검과 양탄자를 팔았던 이븐 알 아시드 하산 김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낙타는 원래 다년생 관엽식물이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으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죠. 이 한많은 식물의 잎이 귀가 되고 줄기는 팔다리가 되어 사막을 걷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세상엔 달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요. 3. 탐닉 낙타에 관해선 그 시인이 말해야 한다. 그 시인은 밤하늘에 낙타좌를 둘 정도, 낙타에 탐닉했다. 낙타표 구두약, 낙타표 시인. 시인은 머리 속에 모래를 퍼담고 바람을 풀어 낙타를 기른다. 왜? 나의 의견은 달빛에 있다. 낙타가 피리소리를 따라 비단의 바다, 사구를 건널 때, 낙타의 등에는 달빛이 가득 실린다. 밤의 눈동자, 그 달빛의 부드러움이 낙타의 혹 속에 가득 고인다. 그 시인의 뇌종양. 그 시인의 구두굽은 낙타의 발처럼 걷기에 편했다. 바램이 그러했겠지만, 길을 위해 태어난 낙타가 길을 위해 죽어가듯, 그 시인도 결국은 길에서 죽었다. 달빛 가득 고인 혹이 터져버린 것이다. 퍽. <메모> 내가 난곡에 있는 그의 자취방을 맨 처음 찾아갔을 때 그는 이 시를 보여줬었다. 소식이 끊긴지도 참 오래 되었다. 수첩에 적힌 그의 전화번호는 언제부턴가 결번이다. 장가는 갔을까? 여전히 가난한 시인으로 남아 있을까? 지금도 오아시스를 찾아 달빛 가득한 사막을 걷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