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불 꺼진 방에서 캐스트어웨이를 보고 있었다. 시계바늘은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 한 점에 멈춰 있었고,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그 어둠 속에 나는 섬처럼 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척 놀랜드. 그가 떠밀려 왔을 때, 그 섬이 무인도라는 것을 나는 벌써 알고 있었지만 말해줄 수는 없었다. 부질없는 일이었으나 그의 희망을 조금만이라도 연장시켜주고 싶었다. 달리가 그린 전화가 있는 해변 속의 전화선은 끊겨 있다. 그가 사방이 텅 빈 장벽에 가로막혔던 것처럼, 그날 밤 나의 조난신호 역시 아무 곳에도 가 닿지 못했다. 그가 고독에 몸부림칠 때, 그는 몰랐겠지만, 그가 있어 나는 아주 조금 덜 외로웠을 뿐이다. 그래도 그는 나보다는 행복한 사내였다. 각본대로라면 그는 반드시 탈출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게다가 그는 주인공이었으므로. 절망마저도 그의 승리에 따라붙는 수식어였으므로.
그는 예정대로 탈출에 성공했고, 그가 떠나자 나는 또다시 무인도가 되었다. 두려웠으므로 나는 마치 소라게처럼 내 안 더 깊숙한 곳에 숨었다. 끔찍한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꼬박 이틀 동안,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에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아마 그는 지금쯤 침대의 쿠션에 다시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가끔 악몽을 꾸기는 하겠지만, 깨어나면자신이 이미 오래 전에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될 것이다.그러나섬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그날 밤 그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그 섬에 떠밀려 갈 수 있다. 간혹 어떤 이들은 제 스스로 섬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